미진의 마티즈를 발견한 중호가 그 뒤로 주차를 한다.
25. 영민의 거처 : 화장실 / 밤
샤워기를 끄고 세면대 위의 거울을 보는 미진. 젖은 머리를 매만지며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26. 영민의 거처 : 거실 / 밤
미진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다시 본 거실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집기들은 모두가 고급인데 전혀 관리를 안 한 듯 하다. 창문엔 커튼이 쳐져 있는데 극장에서나 쓰일 법한 두꺼운 천이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담배를 피우며 수족관을 바라보고 있는 영민. 물 떼가 잔뜩 낀 수족관 속으로 화려한 문양의 열대어 몇 마리가 보인다. 미진 콘돔을 차에 놓고 왔나봐요. 잠깐 나갔다 올께요. 영민이 미진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현관으로 향하는 미진. 현관문이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져 있다. 침을 꿀꺽 삼키더니 태연하게, 미진 저기요. 문이 잠겼는데요?
영민 그래요?
영민이 미진의 뒤로 다가온다.
27. 초소 앞 / 밤
운전석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초조한 얼굴의 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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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10시 29분. 10시 30분이 되자마자 미진에게 전화를 걸면, 신호가 가다가 끊긴다. 중호 모야. 이... 또 한 번 걸어도 마찬가지다. 주변을 둘러보면 빽빽하게 늘어선 집들... 잠시 생각하더니, 4885로 전화를 거는데, 음성으로 넘어간다. 중호 씨발... 난감한 표정으로 이형사에게 전화를 거는 중호.
28. 수산시장 안 / 밤
시장 안. 저 멀리 도주하는 투척남을 뒤쫓는 형사들. 맨발, 혹은 짝발인데 생선이 담긴 다라이를 밟아 넘어지고... 난리다.
29. 초소 앞 / 밤
중호 (전화를 끊으며) 미치겠네... 난감한 얼굴의 중호가 목을 빼고 창 밖을 보면, 우로는 단독 주택이, 좌로는 원룸 빌라가 있다. 둘을 번갈아 보더니, 빌라의 현관을 향해 가는 중호. 현관 옆으로 10개가 넘는 초인종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인상을 찌푸리더니 그 중 하나의 초인종을 누르는 중호.
30. 영민의 거처 : 화장실 / 밤
피와 땀에 절은 미진의 얼굴. 재갈이 물린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고 있다. 팔다리가 뒤로 꺾인 채 포박된 슬립 차림의 미진. 문이 열리며 발가벗은 영민이 묵직한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영민의 몸엔 햇볕에 그을린 러닝셔츠 자국과 어깨의 굳은살이 선명하다. 세면대 위의 거울을 잠시 들여다 보더니 미진의 머리맡에 가방을 털썩- 내려놓는 영민. 지퍼를 열고 내용물들을 쏟아내면, 타일 위로 쏟아지는 것들은 검게 굳은 피로 얼룩진 온갖 공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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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본 미진의 눈이 커지며 꿈틀거린다. 공구들을 뒤적여 S자의 갈고리를 찾아 들더니, 벽에 박아 넣은 강철 링에 거는 영민. 미진의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가위를 든다. 가위에 엉겨 붙은 딱딱하게 굳은 살점과 핏덩이들을 떼어내며, 영민 너 지영이 알지?
미진 (놀라자)
영민 걔 얼굴 본 지 오래됐지, 그지?
꿈틀거리는 미진. 영민 (가위를 들이대며) 소리 지르지 마. 걔도 소리 지르다 혓바닥 잘렸어. 꼴깍 침을 삼키며 꿈틀거림을 멈추는 미진. 영민이 재갈을 풀자 부들부들 떨며 헐떡이기만 할 뿐 조용하다. 영민 그렇지. (잠시) 미진아. (대답 없자) 대답해. 미진 예, 예... 영민 집에 가고 싶어?
미진 (흐느끼며) 예... 영민 왜 집에 가야되는데?
미진 ....... 영민 왜 니가 살아야 되냐고... 말해봐. 미진 (당황하더니 입을 열려하는데 할 말이 없다)
영민 없어?
미진 (여전히 머뭇거리더니)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영민 없는 거야. 그지?
미진 (재갈을 씌우려 하자) 자, 잠깐만요. 따, 딸이 있어요. 일곱 살짜리 딸이 있어요. 잠시 보더니 발악하는 미진에게 다시 재갈을 물리는 영민. 영민 사람들은 니가 없어진 줄도 모를꺼야. 당연히 찾는 사람도 없을 꺼고. 재갈을 다 물리자 정과 망치를 들고, 영민 움직이지 마. 하나도 안 아프니까. 지금까지 아파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 미진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더니 옆 머리에 정을 대는 영민. 미진의 두 눈이 뒤집어지며 재갈 물린 입에서 기이한 소리가 새어나온다. 영민 움직이면 진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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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머리를 향해 망치를 후려치는 영민. 순간, 미진이 몸을 트는 바람에 망치가 정을 맞추지 못한다. 퍽- 미진의 이마를 스치며 타일 바닥에 꽂히는 망치. 미진의 몸이 갓 잡힌 물고기처럼 격렬하게 파닥인다. 그런 미진에게 정을 겨누고 계속해서 내리치지만
워낙 격렬하게 몸부림치기에 계속해서 맞추지 못한다. 그렇게 몇 번을 실패하던 중 정을 쥔 자신의 손을 망치로 내리찍는 영민. 악- 하고 아파하더니 정을 던져버리고 미진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두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맞추지 못하는 영민. 타일을, 어깨를, 다리를 때리다 결국 머리에 적중을 시킨다. 그대로 눈알을 뒤집으며 경련을 일으키는 미진. 깨진 타일 바닥으로 핏물이 흐른다. 호흡을 고르는 영민. 이때 초인종이 울린다. 짐승처럼 상체를 세우고 귀를 쫑긋 세우는 영민. 또 다시 초인종이 울리자 후다닥 공구들을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