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에서 용퇴하면 그 자가 바로 영웅호걸, 시류 좇아 옹색하게 살지는 않지.
놀랍다! 오의(烏衣) 거리에서 왕씨, 사씨 가문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무섭구나! 청산 이쪽저쪽이 오(吳)와 월(越)로 갈라지다니.
지겨워라! 뱀과 용이 뒤섞인 이 번잡한 세상. 이 늙은이 이제는 떠나야겠네.
(憎蒼蠅競血, 惡黑蟻爭血. 急流中勇退是豪傑, 不因循苟且. 嘆烏衣一旦非王謝, 怕靑山兩岸分吳越. 厭紅塵萬丈混龍蛇. 老先生去也.)
―‘취태평(醉太平)·은거로 돌아가다(귀은·歸隱) 제2수’ 왕원형(汪元亨·원말 명초)
급류용퇴. 세찬 물결을 타고 거침없이 내닫다 과감하게 물러난다? 영웅호걸의 도저한 결심이 아니면 쉬 결행하지 못하리라. 눈앞의 명리를 놓고 파리떼, 개미떼처럼 다투는 인간 군상, 그 알량한 ‘실개울’에 합류하려고 안달복달하는 탐욕이 가증하고 추악하다. 세상사 상전벽해라 중국 동진(東晉)의 호족 왕도(王導)나 사안(謝安)처럼 지난날 번성했던 귀족 가문의 거리도 진작 평민의 마을로 변했고, 한때 한배를 탔던 오와 월도 어느새 서로 등돌리지 않았던가.
원말 명초(元末明初)의 혼란기에 관리를 지낸 시인은 세상의 시비곡직이 헝클어지자 은거를 결심한다. ‘옹색하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시류의 급소를 공격했으되 과격하거나 비장하지 않은 담담한 마음새다. 문화적 암흑기였던 원대의 많은 문인들처럼 왕원형의 행적도 묘연하지만 연작시로 된 그의 노래는 상당수 전해진다. ‘취태평’은 곡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