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떨어지는 산 과일, 등불 아래 울음 우는 풀벌레.
백발은 결국 검어지기 어렵고, 단약(丹藥) 황금도 만들 수가 없다네.
늙음과 질병을 없애려 한다면, 오직 한길 무생무멸(無生無滅)의 불도를 터득하는 것.
(獨坐悲雙鬢, 空堂欲二更, 雨中山果落, 燈下草蟲鳴. 白髮終難變, 黃金不可成. 欲知除老病, 惟有學無生.)
―‘가을밤 홀로 앉아(추야독좌·秋夜獨坐)’ 왕유(王維·701∼761)
시불(詩佛)이란 별칭에 걸맞게 불도에 매진하는 시인의 자화상. 비 내리는 가을밤, 시인은 늙음을 슬퍼하며 밤늦도록 수련에 열중한다. ‘빗속에 떨어지는 산 과일, 등불 아래 울음 우는 풀벌레’, 고즈넉한 분위기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이내 시는 숙연해진다. 누군가는 유가에 충실하여 관직에 오르지만 벼슬길의 간난신고(艱難辛苦)는 늙음만 재촉할 뿐 활력을 되찾을 수 없고, 누군가는 도가의 불로장생술을 좇아 연단술(鍊丹術)을 익히지만 성공했다는 소식은 없다. 시인이 깨달은 해결책은 불교 귀의. 인간의 칠정육욕(七情六欲)을 제거하기 위한 ‘무생(無生)’의 이치를 터득하는 길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고, 이로써 늙음과 질병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리라는 기대에 부푼다. 시인의 깨달음이 일견 순박한 듯 억지인 듯 무미건조한 설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문득 생로병사의 숙명을 환기해주는 하나의 울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시인은 과거 급제 후 모친상으로 2년 낙향한 것을 빼고는 죽을 때까지 벼슬을 놓은 적이 없다. 심지어 안녹산의 반군 치하에서도 타의로나마 관직을 유지했다. ‘늙음과 질병을 없애려 한다면, 오직 한길 무생무멸(無生無滅)의 불도를 터득하는 것’이라는 시인의 믿음에는 얼마간 과장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