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유린가 봐, 겨울 한울처럼
이처럼 작은 한숨에도 흐려 버리니……
만지면 무쇠같이 굳은 체하더니
하로밤 찬 서리에도 금이 갔구료
눈포래 부는 날은 소리치고 우오
밤이 물러간 뒷면 온 뺨에 눈물이 어리오
타지 못하는 정열, 박쥐들의 등대
밤마다 날어가는 별들이 부러워 쳐다보며 밝히오
여보
내 마음은 유린가 봐
달빛에도 이렇게 부서지니
―김기림(1908∼?)
‘유리창’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정지용의 것을 떠올리기 쉽다. 정지용의 작품도 탁월하지만 김기림의 ‘유리창’ 역시 그에 못지않다. 그 둘은 1930년대 한국 문단의 대표들이었다. 그들이 같은 제목의 서로 다른 시를 썼다는 우연이 퍽 신기하다. 게다가 묘하게 겹치는 점도 있다. 정지용도 그랬지만 김기림도 ‘유리창’ 앞에서는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남들 앞에서 울 수가 없으니 혼자 돌아서 유리창을 붙들고 울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김기림은 눈물이나 슬픔하고는 통 어울리지 않는 시인이다. 지적이고 세련되고, 따뜻하기보다는 차가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직업도 기자, 교사, 강사였다. 어디 가서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어른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그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흐느끼고 있다. 자신은 아주 나약한 사람이라면서, 작은 한숨에도 흐려지고 달빛에도 부서지는 마음이라면서 슬퍼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낯선 김기림을 발견하게 된다. 안경알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뽐내던 한 지성인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는 회의나 회한 따위는 없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강철 같은 그에게도 흐느끼는 밤과 몸부림치는 어둠이 있었다. 사람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마음이 곧잘 부서지는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란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