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 초가 제비집 옆에
새끼를 밴
어미거미 베틀에 앉았다
북도
씨줄도 없이
―김춘추(1944∼ )
한국인에게 제비는 낯설지 않다. 제비를 본 적도 없는 어린애들도 이 새를 안다. 심지어 좋아한다. 이게 다 ‘흥부와 놀부’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제비는 은혜와 원한이 확실할 정도로 똑똑하고 사람을 부자로 만들 정도로 능력이 있다. 이야기 바깥의 이미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적으로 제비는 삼짇날에 찾아와 중양절에 떠난다고 해서 영험한 새라고들 말한다.
이 시 맨 앞에는 떡하니 ‘삼짇날’이라는 단어가 놓여 있다. 이 강력한 단어는 제비가 돌아오는 날을 연상하게 만드니까 우리는 주인공이 제비인가 잠시 헷갈린다. 그런데 주인공은 따로 있다. 제비집 옆에 사는 거미가 바로 시의 진짜 주인공이다. 길조 제비에 비하면 상당히 하찮다. 게다가 제비 옆집에 사는 신세라니. 언제 잡아먹힐까 조마조마하다.
상황이 이미 극한인데 거미는 엄마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거미는 ‘초극한 직업인’이 되었다. 북도 씨줄도 없이, 그러니까 도움도 밑천도 없이 엄마는 살기 위해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다. 엄마가 살아야 배 속 새끼도 사니까 살 일이 까마득해도, 가진 게 없어도 열심이지 않을 수 없다.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엄마’가 되는 순간, ‘엄마’라는 단어가 끼어드는 순간 길조는 사라지고 응원만이 남는다. 고된 상황에서 저렇게 애쓰는 엄마는 살아야 한다, 그것도 잘 살아야만 한다. 저 짧은 시에 우리 엄마, 그 엄마의 엄마, 그리고 수많은 엄마의 엄마들이 겹쳐 보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