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의 길과 / 딱정벌레의 길과
제비꽃의 길과 / 굴참나무의 길과
북방개개비의 길이 있고
드디어 인간의 길이 생겼다
그리고 인간의 길옆에
피투성이가 된 고양이가 버려져 있다
북방개개비의 길과 / 굴참나무의 길과
제비꽃의 길과 / 딱정벌레의 길과
너구리의 길과 / 갯지렁이의 길과
고래의 길이 사라지고
드디어 인간의 길만 남았다
그리고 인간의 길옆에
길 잃은 인간이 버려져 있다
―황규관(1968∼)
김소월의 시는 왜 인기가 많을까. 어렵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크다. 그의 시는 낮은 자리의 시다. 유식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소월의 시는 흔한 감정을 다룬다. 헤어짐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파도 참았던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그뿐만 아니라 소월의 시는 어쩐지 술술 읽힌다. 반복이 많은 것 같은데 지루하지 않고, 비슷한 말의 뉘앙스가 새롭다.
‘진달래꽃’ ‘가는 길’ ‘먼 후일’. 절창이라고 알려진 소월의 작품이 모두 그렇다. 이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4연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기승전결처럼 딱 닫힌 완전함을 느끼게 한다. 안정감을 준다는 말이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도 4연 구조인데 시인은 여기에 하나의 장치를 추가했다. 그건 데칼코마니 같은 대구다. 1연에서는 고래, 갯지렁이, 너구리 등이 하나씩 등장하고, 3연에서는 하나씩 사라진다. 2연에서는 고양이가 버려지고 4연에서는 인간이 버려진다. 그 흐름과 대비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끝내 마음과 생각마저 사로잡는다.
이건 특별한 기법은 아니지만 원래 단순한 기본이 제일 어렵고 중요한 법이다. 기본을 깔끔하게 활용한 실력은 매력적이다. 게다가 시의 메시지 역시 가장 단순하고 어렵고 중요한 기본을 향하고 있지 않은가. 곰곰이 음미하기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