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대충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소리 내며 피더냐.
이 세상에 시끄러운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어떻게 생겼더냐.
이 세상에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모두 아름답더냐.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언제 피고 지더냐.
이 세상의 꽃들은 모두
언제나 최초로 피고 최후로 진다.
―이산하(1960∼)》
문답법은 일종의 화술이요, 수사학이다.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면 그것은 일종의 담론이 된다. 이것은 공자라든가 소크라테스가 잘 보여준 바 있다. 질문과 대답의 이어짐을 우리는 철학이라고 부른다. 평범한 질문에 특별한 대답이 따라오면 그것은 깨달음이 된다. 왜 산에 사냐는 말에 그저 웃고 만다는 이백의 ‘산중문답’이 이에 해당한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현답을 우리는 시학이라고 부른다.
시의 출발은 뭔가 물어보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질문에 대해 남과 똑같은 대답을 답지 채우듯 쓰고 떠나는 사람은 시인이 아니다. 그런데 가끔 어떤 사람은 자기만의 대답을 생각하고, 대답을 꿈꾸고, 대답을 스스로 산다. 그러면서 서서히 진짜 시인이 되어간다.
오늘의 시에는 모두 다섯 개의 질문과 다섯 개의 대답이 들어 있다. 질문은 엄한 선생님의 것 같고 대답은 배움을 구하려는 제자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한 사람이 묻고 대답했다. 정확히는 이산하 시인이 묻고 그의 평생이 대답했다. 질문에 달린 대답 하나하나가 모두 각오고 깨달음이다. 대충 피는 꽃은 없다는 대답은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다. 대견한 꽃을 함부로 해서 되겠느냐는 다짐이다. 세상에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는 대답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다르게 태어난 꽃이 하나하나 귀하다는 말이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에 이 시가 유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