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
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
바람처럼 스쳐간 흑인 소년의 자전거 바큇살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을까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아침마다 작은 갯벌에 오던 바닷새들이 거기 있을까.
― 이어령(1934∼2022)》
시집을 받고 나서 딸아이와 이 작품을 읽었다. “무슨 시 같아?”라고 물어봤더니 열다섯 살 아이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헤어졌다는 것 같아.” 아이는 대답과 시집을 남기고 일어섰고, 나는 남은 말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헤어졌다’는 말은 정확하게 맞는 표현이며 동시에 조금 틀린 표현이다. 이 시는 헤어졌지만 이제 다시 만나러 가면서 쓴 시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쓴 이어령은 크고 단단한 태산 같았다. 강연장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몰려와도 눈빛은 형형했고 연설은 끊김이 없었다. 대단하고 강한 분. 지성의 장이 사상의 전쟁터라면 그는 단연 대장군이었다. 그런데 시의 영역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단단한 지성의 뒤편에는 여린 내면이 있다. 헤겔, 칸트가 두렵지 않은 이어령은 사라지고 아프고 무너지고 후회하는 인간이 고개를 든다. 이런 시는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다.
이어령 시인은 2022년 봄에 세상을 떠났고 시인의 딸은 딱 10년 전 봄에 먼저 떠났다. 그리움은 10년 동안 고여 있다가 시인의 마지막 시집, 가장 마지막 시가 되었다. 딸이 살던 헌팅턴비치에 가도 아버지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직접 자식 찾아서 가셨다.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가 마지막 시집의 서문이다. 선생님, 부디 평안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