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떨어진 단추 하나를 보았지.
그래, 그래, 우리는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
이렇게 단추 하나 떨어뜨리지.
그래, 그래, 우리는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
서쪽 하늘에 깜빡, 해를 하나 떨어뜨리지.―이준관(1948∼)
공부를 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놀기를 잘하는 것도 공부 못지않게 어렵다. 먹고살자니 놀 시간이 없고, 놀 시간이 없으니 노는 법을 잊고, 노는 법을 잊으니 더 못 놀게 된다. 어른이 무슨 놀이 타령이냐 싶겠지만 놀이는 학자들도 인정한 문명의 기반이었다. 대표적으로 하위징아는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이라고 불렀다. 하위징아 훨씬 이전에 실러라는 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놀이를 하는 사람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 가라사대, 놀이는 인간의 본질이며 해방의 방법이란다. 바꿔 말하면 놀기를 잊은 인간이란 본질 찾기도, 해방도 불가능한 신세라는 말이 되겠다.
골목에서 딱지치기하며 자란 어른들이야 억울할 게 없다고 해도 놀이 면에서 보면 요즘 아이들이 짠하다. 한창 놀 나이에도 못 놀면 그 인생에 놀이는 언제 찾아오나. 요즘 아이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못 나가 놀고, 친구가 없어서도 못 놀고, 학원에 숙제에 바빠서도 못 논다. 이준관 시인의 시를 보면 단추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놀이에 홀딱 빠진 어린애들이 나온다. 이렇게 운동장에서 정신없이 뛰어놀아야 어린이고 그게 유년이다. 그 힘으로 우리는 세상을 해석하고 살아낼 수 있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 ‘실컷 놀기’라는 선물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