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로소 벙그는 꽃 한 송이
뭐라고 하시는지
다만 그윽한 향기를 사방으로 여네
이쪽 길인가요?
아직 추운 하늘문을 열면
햇살이 찬바람에 떨며 앞서가고
어디쯤에 당신은 중얼거리시나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 하나가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이쪽 길이 맞나요?
―한광구(1944∼)
좋은 것 중에서도 드문 것에 대하여 우리는 ‘귀하다’고 표현한다. 매화도 그중의 하나다. 봄날의 꽃은 많아도 혹한을 이기고 피는 꽃은 드물다. 옛 선인들은 백매화를 보면 깨끗하다 칭송했고 홍매화는 보면 신비롭다고 사랑했다. 그들에게 매화는 결코 물체가 아니었다. 그 속에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화분 안에 심겨 있는 것은 분재가 아니라 일종의 마음이었다.
역사상 매화 사랑으로 가장 유명한 이는 퇴계 이황일 것이다. 그가 쓴 매화시만 해도 100편이 넘고 매화와 주거니 받거니 문답을 나누는 문답시도 있다. 오늘의 시에도 매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시인은 매화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라면 눈을 마주하고, 이마를 비비듯 가깝고 기꺼운 자세다. 그러다 시인은 매화에게 질문한다. 뭐라고 하십니까? 그래, 이쪽입니까?
물론 매화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시인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왜 묻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매화는 물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거기에는 나도 미처 모르는, 나의 바람과 소망과 뜻과 의지가 들어 있다. 그러니 물어야 한다. 내가 사는 방향이, 가는 방향이 이쪽이 맞습니까? 우리 삶의 방향은 우리의 것이면서 우리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가고 있으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물으면서 더듬더듬 간다. 이쪽 길이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