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책 ‘미의 역사’에 따르면 중세의 예술은 빛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대성당의 정교한 창유리를 통해 빛이 내부로 들어오면 그 아래에 있는 신도들은 신성함에 감격하곤 했다. 많은 문명에서 신은 빛과 동일시됐다. 이집트의 ‘라’, 페르시아의 ‘아후라 마즈다’ 역시 모두 태양빛을 상징하는 신들의 이름이다. 그 빛 안에 안기고 싶지 않은 인간은 없었으리라.
신성이 사라진 근대에서도 빛은 또 다른 의미로 중요하다. 사람들은 채광이 잘 드는 남향 집을 좋아한다. 식물은 빛을 받아야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데 과연 식물만일까. 우리의 건강 상태에도, 우리의 마음 상태에도 빛이 필요하다. 빛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찾기 어렵다.
다만 살면서 아주 강력한 빛에 휩싸이는 경험은 드물다. 이 시대의 조도는 늘 적정 수준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의 시를 준비했다. 시에서 빛이 사랑인지, 사람인지, 경험인지 확실치 않으나 시인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빛에 강타당했다. 얼마나 강렬했는지 멍이 들 듯, 칼에 찔리듯 비틀거렸다고 나온다. 빛에 멍이 들 정도의 경험은 무료한 일상에 큰 파격이 될 것이다. 넘치는 빛 무리에 파묻히는 경험을 상상해본다. 일조량이 부족해 한 줌 빛에 목마른 우리에게는 부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