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온다.
―정지용(1902∼1950)
‘논어’를 보면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등산하시는 분들이 특히 이 구절을 좋아한다. 역시 지자보다는 인자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우열이 무슨 상관이랴. 바다와 산은 서로 대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에 바다와 산이 차례대로 왔다 가기도 한다. 시인 정지용이 그랬다.
정지용 시인은 젊어서 바다의 시를 여러 편 썼고 조금 더 나이 들어서는 산의 시를 썼다. 바다의 시는 감각적으로 탁월하고 산의 시는 정신적으로 깊이 있다. 그중에서 무엇이 더 나으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을 더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다. 아직 덜 인자하고 더 지혜롭고 싶은지 나는 정지용의 바다 연작을 좋아한다.
그중 하나가 오늘의 시다. 여섯 줄이 전체인 시. 그것만으로도 꽉 차 있는 시. 이 시를 보면 커다란 밤바다 앞에 서 있는 한 사람, 유난히 키가 작았다던 정지용이 보인다. 사람이 바다보다 클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밤바다 전체를 앞에 두고도 이 시인은 작지 않다. 그의 외로운 마음은 바다도 밤도 불러낼 만큼 크다.
어떻게 백 년 전에 이런 시를 썼을까. 그에게는 시 학교도 시 선생도 없었다. 충북 옥천 출생이니 바다를 일찍이 접했던 것도 아니다. 공부하러 일본 오고 가는 뱃길에서 그는 바다를 보았다. 외로운 갑판에서 홀로 써 내려갔을 시는 백 년을 넘어 살아 있는 시가 되었다. 이 시인은 천재고 그의 시는 교과서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