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자락 스치는 소리
댓가지 풀썩거리는 소리
문풍지 흔들리는 소리
들은 듯한 밤
어머니
살그머니 다녀가셨나 보다.
장독대 위에
백설기 시루 놓여있는 걸 보니
한경옥(1956∼)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한다. “나는 선물을 받을까요?” 하루에도 열두 번 어린 아들이 물어올 때면 행복하며 씁쓸하다. 아들은 착한 일을 안 해도 선물을 받을 테니까 행복하다. 그리고 예전에 착한 어린이였던 모든 착한 어른들은 선물을 못 받을 테니까 씁쓸하다. 적어도 성탄절에는 조금만 더 따뜻하고 싶다. 그래서 선물을 준비했다. 성탄절에 기다리는 산타의 선물 부럽지 않은 시, ‘눈 내린 아침’이다.
한밤 내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얀 설경을 묘사하겠지, 예상했는데 이 시인은 전혀 다르게 말한다. 시인은 간밤에 눈이 내렸다고 하지 않고, 어머니가 살짝 왔다 가셨다고 표현한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고 하지 않고, 대신 어머니의 선물이 저 장독대 위에 놓여 있다고 쓴다. 아, 어머니는 나를 사랑해서 세상의 눈으로 오셨구나. 깨닫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세상이 온통 내가 사랑받은 증거로 충만해진다. 나는 이렇게 따뜻한 겨울을, 뜨끈한 눈을 본 일이 없다.
예전에 김현이라는 평론가는 하얀색은 구원의 색조이며 사랑의 상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얀 눈을 구원처럼 기다리나 보다. 산타의 선물 따위는 받지 않아도 좋다. 사실 성탄절에는 받고 싶은 선물이 따로 있다. 온몸으로 세상이 되어주셨던 분, 함박눈처럼 사랑을 퍼부어준 사람. 어머니가 오신다면 산타보다 더 반갑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