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대개는 잊어버리고
어쩌다 한 토막씩
말도 안 되게 남아 있다
나는 한평생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나
잊어도 좋은 꿈들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고, 꿈꾸며 살 날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나는 한평생
얼마나 많은 꿈을 잊었나
사는 게 잊어버리는 연습이라면
말도 안 되게 남은 꿈들은
언제 다 잊을 것인가
그 꿈 다 잊으려고 아침마다
잠이 모자라나보다 아침마다
말도 안 되는 몇 토막 그리움으로
모자란 채로 나는 남는다
정양(1942년∼)
박태원의 소설 중에 ‘적멸’이라는 작품이 있다.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인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인생은 꿈이다. 그리고 인생이 좇고 있는 것도 꿈이다.” 무려 90년 전에 박태원은 이미 알았던 것이다. 인생이 꿈을 향해 있고, 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생은 단단한 현실에 토대를 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인생의 중요한 일부는 실체도 없는 꿈이다. 꿈을 꾸지 않고서 우리는 낮을 살 수가 없다. 꿈을 품지 않고서는 우리는 삶도 살 수가 없다.
매일의 꿈이 모여 일 년이 되었다. 12월마저 지나가면 우리의 일 년은 ‘안녕’을 고하고 떠날 것이다. 사라져가는 2021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 시를 읽자. 정양 시인의 ‘그 꿈 다 잊으려고’는 우리가 꾼 모든 꿈에 대한 시, 모든 나날에 대한 시다. 꿈으로 쌓아 올린 한 해를 정리하기에 이 시만큼 적합한 작품은 없다. 12월에 이 시를 읽지 않으면 대체 언제 읽겠는가.
올해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되고 힘든 해였다. 전쟁터에서도 아기가 태어나듯 우리는 힘든 중에도 꿈을 품었다.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꿈, 바라던 바를 이루리라는 꿈, 원하던 사람이 되리라는 꿈. 그 꿈은 대개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도 탓하지 말자. 잊혀야 하는 꿈도, 꿈을 잊어야 했던 우리도 원망하지 말자. 2021년의 남은 꿈들을 잘 잊어야 내년의 꿈이 다시 꿔질 테니까. 이제는 잘 잊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