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하략)
―김기택(1957∼ )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 중간에 ‘가을꽃’이라는 글이 있다.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 이 영민한 소설가는 항상 옳은 소리만 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힘입어 벌레 소리와 찬 달빛과 가을꽃을 즐기는 것은 후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 된다.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 중간에 ‘가을꽃’이라는 글이 있다.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 이 영민한 소설가는 항상 옳은 소리만 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힘입어 벌레 소리와 찬 달빛과 가을꽃을 즐기는 것은 후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 된다.
꽃만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도 벌레 소리에 감응하곤 한다. 감응력이 뛰어난 시인들의 경우는 더하다. 작은 힘을 가지고 태어나 큰 세상을 견뎌내는 벌레를 보고 시인들은 자기 자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김기택의 이 시도 벌레와 깊이 공명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벌레 중에서도 더 작은 것, 목소리가 더 작은 것을 떠올린다. 그것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 시인은 더 힘없는 벌레들이 어두운 곳에 매달려 사는 모양을 떠올린다.
이 시는 목소리 큰 사람만 돌아보는 세상 탓에 우리가 잊고 사는 사실을 알려준다.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소리다. 크게 나서지 못하는 여린 마음도 마음이다. 우리는 때로 들리지 않는 것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