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잘 가요.
가다가 길 잃지 말고
여린 영혼은 조심히 안고
가야 할 곳 잊지 말고
조심해 가요.
(중략)
어느 인연 아래서건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우선 영혼끼리 인사를 나누고
내 숨소리가 편하게 당신께 가는지,
당신의 체온이 긴 다리를 건너
내게 쉽게 오는지도 지켜보아야겠지.
그럼 잘 가요.
가는 여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부디 아무 상처받지 않기를,
모쪼록 돌아가는 당신의 길이
늘 빛나고 정갈하기를……
어려서는 달력을 보며 기쁜 날을 생각했다. 6월에는 현정이 생일이 있구나, 7월에는 진영이 생일이 있구나. 열두 개의 달은 축하할 일로 빛이 났다. 인생도 반짝였다. 그래, 어렸으니까.
나이가 들어가니 달력에는 다른 날들이 생겼다. 4월은 그대들의 기일날, 5월은 김 군이 사망한 날, 10월은 선생님 돌아가신 날. 열두 개의 달은 생일이 아니라 소중한 목숨을 보낸 날짜로 채워진다. 이제는 인생의 반짝임에 속지 않는다.
마침 마종기 시인의 새 시집이 나왔다. 이분은 나를 모르고, 나는 이분을 모른다. 다만 나는 그의 시를 알 뿐이다. 아니까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마종기의 새 시집이 나와서 기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가을이지 않은가. 이 계절만큼 이 시인과 어울리는 때는 없다. 시집을 읽다가 이 시에서 멈추었다. 이 시를 읽는 독자라면, 그리고 박지선이라는 착한 한 사람이 떠난 게 속상한 사람이라면 ‘이별하는 새’ 앞에서 한참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인은 모르고 썼겠지만 우리는 알고 읽는다. 잘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그러나 분명 멋지고 착했을 사람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이 사실이 슬퍼서 시가 슬퍼진다.
많은 사람들은 뒤늦게라도 말하고 싶을 거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을 거다. 그래서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읽는다. 시는 늘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그럼 잘 가요.” 좋은 사람, “조심해 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