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속에 발이 푹푹 빠진다/허공에서 허우적 발을 빼며 걷지만/얼마나 힘드는 일인가/기댈 무게가 없다는 것은/걸어온 만큼의 거리가 없다는 것은/그동안 나는 여러 번 넘어졌는지 모른다/지금은 쓰러져 있는지도 모른다/끊임없이 제자리만 맴돌고 있거나/인력에 끌려 어느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자국 발자국이 보고 싶다/뒤꿈치에서 튕겨 오르는/발걸음의 힘찬 울림을 듣고 싶다/내가 걸어온/길고 삐뚤삐뚤한 길이 보고 싶다
문학에도 영화에도 ‘장르물’이라는 영역이 있다. 장르물이란 특유의 문법이나 규칙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콘텐츠를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SF 영화는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는 장르물이다. 지금이 아닌 때, 지구가 아닌 외계, 인간이 아닌 존재. SF 영화에는 이렇게 ‘아닌 것’ 세 가지가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너무나 비현실적인 영역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SF 영화의 초점은 우주가 아니라 지구에,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인에 놓여 있다. 지구가 아닌 곳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인간이 아닌 존재의 시선으로 인간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이 장르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SF 영화가 그러하듯, 김기택 시인의 시 ‘우주인’은 우주의 상황과 우주인의 형상을 잠시 빌렸을 뿐이다. 이 작품은 우주와 과학을 품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감정을 담고 있다. 여기서의 우주인이란 일종의 은유다. 무중력 상태에 놓인 우주인은 중력에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들 내면에 살고 있다. 과거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나아갈 좌표를 찾지 못하는 상황. 있는 것이라고는 힘들다는 느낌, 절망스러운 감정, 걱정스러운 몸뚱이뿐이라면 우리는 무중력의 우주인과 다름없다.
왜 이 시는 낯설지 않을까. 한참 전에 나온 이 시를 읽고 기시감이 드는 것은 SF 영화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