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뭔지, 난
묻지 않으리.
저어기 저 할머니
꼬부랑 할머니
구십을 넘게 살았어도.
삶이 뭔지
그게 도대체가 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어.
저렇게
의문표가 되어
온몸으로 묻고 있는데,
난 묻지 않으리.
삶이 뭔지
뭐가 삶인지
내사 묻지 않으리.
며칠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수험생이 아니고, 수험생을 키우고 있지 않으며 수험생을 알지도 못하는데 매년 수능 날 아침이 되면 경건한 심정이 된다. 경건이란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는 뜻이다. 종교랑은 어울리지만 시험이나 학생하고는 참 안 어울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토록 안 어울리지만 우리는 수능의 날, 비장하게 경건해진다. 조심하여 늦게 출근하고, 학교 근처를 지날 때 경적을 울리지 않으며, 걱정을 받을 사람도 없는데 괜히 걱정을 한다. 학생들은 무사히 시험을 치러냈을까. 부모들은 아직도 떨고 있을까. 문득 떠올리기도 한다. 왜 그런 걸까. 수능은 일종의 상징이다. 그날 하루에 땀, 눈물, 긴 시간, 간절함, 희망, 절망 같은 것이 뒤섞여 있다. 누적된 지난 삶과 마음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날, 수능의 하루에는 24시간이 아니라 어린 인생이 담겨 있다.
지금쯤 누군가는 낙담했으리라. 누군가는 마음이 가벼우리라. 누군가는 이미 울었고 누군가는 내내 불안하리라. 그래도 이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수능의 하루를 가지고 모든 삶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십 평생 살아온 노인도 모르시는 게 삶이라고 한다. 열심히 시험을 보고도 속상한 당신, 시인과 할머니를 한번 믿어 보시라. 수능 답안지에는 정답이 있지만 삶에는 정답이 없다. 시험은 끝났어도 삶은 아직 한창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