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하고 향깃한 냄새로 물들이고,
양지짝의 화안한 빛으로 물들이고,
사르르 군침 도는 맛으로 물들이고,
귤 한 개가 방보다 크다.
―박경용(1940∼ )
노트북을 새로 샀다. 옛날에 샀던 것보다 속도는 빨라졌는데 가격은 싸졌다. 의외로 씁쓸하다. 노트북의 노선은 일종의 상징이다. 시대는 사람에게도 노트북과 같은 변화를 기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터에서도 업무 효율은 더 높아지고 노동가치는 더 내려갈 것이다. 이미 바쁘지만 우리는 앞으로 더욱 바쁠 예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 개발된 노트북이 아니다. 더 많은 업무를 더욱 빨리 처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때론 하루에 하나라도 잘해내면 장하다고 생각해야 내일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기뻐하며 셀프 칭찬할 필요가 있다. 내가 나를 칭찬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칭찬하지 않는다. 삶은 의미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결이 바뀐다.
의미는 찾아야 생긴다. 겉으로 보기에 사소하고, 평범한 존재도 사실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 박경용의 시 ‘귤 한 개’도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시인은 손안에 쥔 귤 한 알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 알의 귤은 제주의 여름과 가을 전체를 품고 있다. 한 농부와 한 귤나무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땅과 햇살과 바람의 정성으로 자라났다. 시인은 작은 귤이 큰 방을 채우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사람이 천수관음으로 진화해야 오늘 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절망에 빠질 때는 ‘귤 한 개’를 생각하자. 작은 귤의 어마어마한 의미를 생각하면 작은 나에게도 어느덧 용기가 생겨난다. 때로는 귤 한 봉지 사 들고, 결연히 퇴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