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내 곁을 지나던 여자가/우뚝 멈춰 섰다
“……17호실?
으응,
알았어
응
그래
울지
않을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다 짐승처럼 운다
17호실에…… 가면
울지 않으려고
백주대로에서 통곡을 한다
이 광경을
김종삼 시인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길을 건너려다 말고
대개 ‘장편’이라고 하면 아주 긴 글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장편(長篇)’이라는 말도 있고 ‘장편(掌篇)’이라는 말도 있다. 긴 이야기를 뜻하는 것은 전자이고, 이 시는 후자에 해당한다. ‘장편(掌篇)’이란 손바닥만 한 글이라는 뜻이다. 이야기계의 촌철살인이랄까. 짧디 짧은 시나 소설을 장편(掌篇)이라고 부른다. 시는 짧아도 여운은 짧지 않다. 17호는 병원을 의미하고 저 여자는 17호 환자를 사랑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이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마음이 아파 눈을 뗄 수가 없다. 시인은 이 장면을 김종삼 시인이 바라보고 있다고 썼다. 이 점이 퍽 흥미롭다. 왜 하필 김종삼인가. 김종삼 시인이야말로 ‘장편(掌篇)’이라는 제목의 시를 여러 편 쓴 시인이다. 김종삼의 시 중에서 ‘장편(掌篇)’이라는 제목의 작품들은 다들 어떤 장면을 담고 있고, 대개 심금을 울린다. 그러니 윤제림 시인의 이 시는 김종삼 시인에 대한 존경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이 시에는 17호 환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와, 사람들의 삶을 슬퍼한 김종삼과, 김종삼을 사랑한 윤제림이 있다. 그러니 쉽게 잊힐 리 없다. 시집 읽는 것은 향긋한 차를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돌아서면 여운이 남아야 옳다. 그런데 시집을 덮고 돌아서도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시가 있다. 윤제림의 이 시가 그렇다. 백주대낮에 통곡하는 저 여인이 남 같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