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 황지우(1952∼)
‘가을’ 하면 추수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익은 곡식을 거두는 마음은 겨울을 대비하는 마음. 그는 한곳에 오래 머물 것이고 깊은 뿌리를 가졌을 것이다. 이를테면 정착민의 내면이라고나 할까.
반대로 ‘가을’ 하면 폐허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떨어지고 흩어지는 가을은 우리에게 고독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정처 없이 떠도는 낙엽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은 유목민의 내면을 지녔다. 그는 정주를 모르고 거친 폐허를 낯설어하지 않는다.
후자의 내면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 시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릴 수도 있다. 바람은 부는데, 폐허 같은 인생길을 어서 다시 떠나라고 등을 미는데, 이 시 앞에서 발을 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문학사는 황지우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사랑하고, 많은 사람은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분명 가을은, 그리고 가을이라고 쓰고 고독이라고 읽는 유목민들은 이 시를 기꺼이 사랑할 것이다.
사람이 늘 달콤함에만 끌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는 듯 외로운 냄새, 꺼끌거리는 입속의 모래, 씁쓸하고 꺼칠한 표정에도 매혹된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우리 인생 안에 폐허, 후회, 바람 같은 것들이 포함돼 있음을.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저 폐허는 어느 사막에 있는 것도 아니고, 비단 한 시인의 것만도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