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글에는 서론, 본론, 결론이 있다. 논설문이 아닌 글이라고 해도 기승전결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시는 좀 다르다. 서두 없이 시작할 수 있고 결미 없이 끝날 수 있다. 뻔하게 기대되는 다음 단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시는 ‘의외의 장르’이다. 시작도 없이 시작되고 끝도 없이 끝나는 이 의외성 때문에, 시는 우리 인생을 닮았다. 진은영의 시를 읽으면 좀 짐작이 된다. 이 시도, 시에 등장하는 우리의 ‘매일매일’도 깔끔한 서-본-결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매일매일 살고 있는데 이 매일의 삶에는 깔끔한 서론도 정리된 결론도 없다. 그저 희망했다 절망하고, 뭔지 모르겠지만 살아낸다.
첫 연을 보면 흰 셔츠와 버찌 열매가 나온다. 암시적으로 청년의 실루엣이 짐작된다. 전통적으로 보았을 때 꿈을 품은 청년이라면 등용문을 넘어가야 한다. 힘과 생명력을 뿜어내며 미래로 달려야 한다. 그런데 이 시의 청년은 매일 넘어진다. 넘어지면 버찌 열매는 깨질 것이고, 흰 셔츠는 검고 붉게 물들 것이다. 마치 피가 흐른 것처럼 말이다. 관념적인 세계와 실제 세계는 다르다. 진짜 세계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하늘 높이 던진 토마토는 더 올라가 이상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흘러내려 땅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처참하게 터져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간다. 낭만과 서정만이 시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는 시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매일매일 시적인가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