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중략)…
그런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떨어진 단추에 대하여
빗방울에 대하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이어령은 누구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태산 같은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진실로 그는 거대한 사람이다. 눈빛이 형형한 사람. 사상이 비상한 사람. 만약 기가 약한 이라면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할 것이다. 실존 인물로서도 그러했고 글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오해했다. 이렇게 잔잔하고 외로운 시가 그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역시 사람이란, 그리고 사람이 지닌 다채로움이란 타인이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명사의 시’로서 이 시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지성인은 시를 이렇게 쓴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시를 추천하는 까닭은 결국 외로움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든, 어디에 있든 우리는 외롭다. 외롭기 때문에 노엽다. 누구든 혼자 태어나 죽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삶을 저주할 것인가. 그 반대다. 이토록 강인한 인간도 무인도를 경험하며 외로움에 사무친다. 그래도 우리의 낮과 밤은 여전히 찾아오지 않는가. 그것을 견디는 것이 삶의 의의, 삶의 전부라는 듯 시인은 덤덤히 이야기를 풀어낸다. 외로움, 사실 그게 치료해야 할 병은 아니다. 너도 나도 외롭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차라리 홀가분하다. 우리 모두 함께 외로운 것이라면 따로 또 같이 외로워도 괜찮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