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것도/잊는 일/꽃 지는 것도/잊는 일
나무 둥치에 파넣었으나/기억에도 없는 이름아
잊고 잊어/잊는 일/아슴아슴/있는 일
‘기억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혹은 가볍게 쓰는 표현이다. 기억은 실체도 없고 지난 일이니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쓱쓱 지워내서 잊으면 된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전혀 맞는 말이 아니기도 하다. 잊지 못할 기억에 사로잡혀 낮도 밤도 저당 잡힌 사람을 나는 안다. 지워낼 수 없는 기억 때문에 뒹구는 마음을 나는 안다. 시를 읽다 보면 모를 수가 없다. 시는 그런 마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체 없는 기억이 실체 있는 현실을 지배하면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런데 시는 그렇게 매정하지 않다. 기억이 현실을 흔든다면, 시는 그 괴로움과 무력감을 어여삐 여긴다. 이것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프로이트는 기억을 매우 중시했다. 기억의 흔적이 표면상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그 심층부에는 남아 있다고 했다. 우리가 밀랍 종이 위에 글씨를 쓴다고 치자. 종이를 치워도 글자는 종이 아래에 새겨져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 밑에는 모든 것이 보존된다. 지워진 것 같지만 마음 구석에 남아 있는 그것을 프로이트는 ‘기억의 근원’이라고 불렀다.
기억의 근원이 꽃잎이 되어 흩날리는 장면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볼 수 있다. 누가 기억을 헛되다고 했나. 그것은 사람의 마음 밖으로 나와 꽃이 되기도 하는데, 잊을 수 없어서 수만 개의 꽃잎으로 피어나는데. 어느 누가 기억을 헛되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