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 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이 오지 않는 겨울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들의 눈싸움할 권리와 눈사람 만들 권리에 대해 생각한다. 겨울이 겨울이 아닌 듯하고 우리가 알던 상식이 비상식으로 변해가는 상황이 단순한 계절의 장난인지, 누적된 세대의 잘못인지를 생각한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맹인 부부는 길에서 노래한다. 등에는 어린아이를 업고 있다. 저도 얼마나 춥고 불편할까. 어린아이를 달래는 부모는 고달플 것이다. 정작 울고 싶은 부모를 대신해 아기가 울어준다. 그리고 더 많은 힘든 사람 들으라고 부부는 힘을 내어 노래한다. 시는 이런 장면을 담고 있다. 시를 읽고 ‘저들은 가엾구나, 나는 따뜻해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셨길 바란다. 값싼 동정과 자기 우위를 위해 생겨난 시가 아니다. 그러라고 읽는 시도, 그러라고 부른 노래도 아니다.
이 시의 핵심은 가엾음이 아니라 ‘노래’에 있다. 부부의 노래는 ‘불가능한 지점을 향한 희망’의 노래다. 세상이 사랑과 용서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희망. 결국 이 세계가 구원받기 바라는 희망. 겨우 두 사람이 노래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느냐 조소하기 전에 시를 읽어보자. 눈물나게 아름다운 탓에 믿고 싶어진다. 저들은 분명 가여운 이들이 아니라 고마운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