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은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가을이 되고 바람이 스산해졌다. 몇 달 전만 해도 싱싱했던 녹음은 이제 낙엽이 되어 길바닥을 굴러다닌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영원한 주제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시절이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찬 바람이 소슬해질 때, 더불어 인생의 씁쓸함이 느껴질 때 생각나는 이 시를 골랐다.
시를 읽으면 언제 어디선가 경험했을 법한 상갓집 풍경이 금세 떠오른다. 망자(亡者)가 아니라 망자(忘者)인 듯 슬퍼하는 이는 유족의 일부뿐이다. 문상객 다수는 망자를 금세 잊는다. 그 대신 눈앞에 있는 타인의 존재와 자기 자신의 생존을 재확인한다. 누가 왔네, 안 왔네…. 누가 잘사네, 변했네…. 죽음 바로 옆에서는 어느 때보다 풍성한 소문과 삶이 펼쳐진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홍준 시인은 냉정한 듯 시니컬하면서도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찌르곤 한다. 이 시에서도 신발을 통해 인생과 죽음을 표현한 부분이 신선하다.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라는 구절을 읽으니 구두와 인생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싶어진다. 먼저 온 구두와 늦게 온 구두가 서로를 밟아대는 저 혼잡 상에서 떨어져 나와 하늘도 들여다보고, 깨끗한 구두와 더러운 구두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보는 가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