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를 /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물이 들어 /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 되나
당신이라는 별에 / 아름답게 지고 싶은 나를
시란 무엇인가. 시는 일종의 ‘이름 붙이기’다. 가끔 존재가 먼저인지 이름이 먼저인지 모를 정도로 이름 붙이기는 중요하다. 시 안에서도 그렇고, 시를 넘어서도 그렇다. 이름은 의미의 첫 출발점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김동식이라는 한 사나이에게 ‘아빠’라는 이름이 주어지면 어떨까. 동일한 그에게 ‘자기’라는 다른 호칭이 주어지면 어떨까. 김동식이라는 존재는 하나지만, 부여받는 이름에 따라 존재의 의미는 변한다. 신화 속의 멋진 신들만 변신을 해내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우리도 삶을 살아내며 변신을 한다. 어떤 변신을 하느라고, 무슨 의미가 되느라고 우리의 삶이 이렇게 힘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작품도 바로 그 이름 붙이기에서 시작한다. 시인은 은행나무에 ‘별 닦는 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은행이 봄과 여름 내내 금빛별을 열심히 닦았더니, 은행잎에 그 노란 별가루가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가을이 되어 노랗게 된 은행잎을 이렇게 해석하다니 시인의 시선이 신선하다.
그런데 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별 닦는 나무는 은행나무의 새로운 이름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새로운 이름이 될 수 있다. 그는 별을 닦는 은행나무처럼, 당신을 닦는 은행나무가 되고 싶다. 한 나무의 변신이 한 사람의 변신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윽고 변신의 계절 가을이다. 이 계절에 우리는 또 무엇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