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중략)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흔히 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 시력을 회복한다.
각 시대는 저마다의 상징적 의미를 보유하고 있다. 그 분야가 문학이라면, 특히나 상징적 의미들은 하나의 빼어난 인물을 통해서 드러나기보다, 뜻을 같이하는 한 무리의 합창을 통해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뜻을 같이하여 모인 사람들을 일컬어 문학에서는 ‘동인’이라고 부른다. 시인 박성룡도 동인, 특히 1960년대의 동인이었다. 이렇게 암울한 시대에 우리는 뭐라도 해야겠다고, 그러니 같이 모여 노래해보자고 모인 이들이었다. 30대의 젊디젊은 사람들은 함께 모여 ‘60년대 사화집’이라는 잡지를 냈다. 동인 박성룡의 곁에는 동인 구자운, 박재삼, 박희진, 성찬경 등도 있었다. 1960년대의 젊은이들은 열정 말고 가진 것 없었지만 그들의 만남으로 인해 우리 시문학은 무언가를 가지게 되었다.
오늘 소개하는 시는 바로 그때, 그러니까 박성룡 시인의 1960년대 작품이다. 우리가 가을에 감동받는 가장 큰 이유는 추수 때문이다. 추수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역경의 극복 다음에야 등장하는 극적인 단계다. 시인은 척박한 환경, 가혹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과일이 무르익었음을 찬탄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가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1960년대는 참으로 척박하였으나, 이 시인은 고난 속에 기적이 도래하리라는 점을 희망하고 있다. 다시 가을인 이 시간에 우리는 어떠한가. 역경을 넘어 찾아와줄 기적 같은 사태를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시간은 흘러 시인은 역사가 되었지만,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