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슬픔과 외로움과 아픔과 어두움 같은 것들을 자신의 쓰레기라 생각한다 버려야 할 것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줍는 거지 사랑하는 거지 몇 해 전 집을 옮길 때만 해도 그들의 짐짝이 제일 많았다 그대로 아주 조심스레 소중스레 데리고 와선 제자리에 앉혔다 와서 보시면 안다 해묵어 세월 흐르면 반짝이는 별이 되는 보석이 되는 원석(原石)들이 바로 그들임을 어이하여 모르실까 나는 그것을 믿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나는 슬픔 부자(富者) 외로움 부자(富者) 아픔의 어두움의 부자(富者) 살림이 넉넉하다.
이 작품을 쓴 정진규는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당시 신춘문예 당선이란 문단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일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즈음에 시인은 ‘현대시’ 동인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의 현대시 동인들이란 한창때의 빛을 뿜어내는 사람들이었다. 이때 시작된 시인의 활동은 계곡처럼 강처럼 굽이굽이 이어졌다.
‘신인’ 정진규 시인은 이후 어느 책에서는 ‘중견’ 정진규 시인이라고 불렸다. 이후 다른 평론에서는 ‘원로’로 불렸다. 신인 루키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다. 병이 찾아오기도 했고, 작품 스타일도 바뀌었다. 어느 때는 연작을, 어느 때는 단형을, 어느 때는 산문시를 선택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잠시 멈칫한다. 정말 없을까. 시인에게서 변하지 않는 것은 간혹 발견되기도 한다. 바로 시, 시의 마음 말이다.
60년을 시를 썼다. 돈도 되지 않고, 밥도 되지 않는 시를 무려 60년간 지켰다. 어느 마음이 그 60년을 지탱했을까. 나는 ‘원석’에 나오는 저 마음이 60년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남들 다 싫어하는 아픔이며 외로움이 언젠가는 별이 될 것이라 믿는 마음은 신인 정진규와 원로 정진규 모두에게서 변하지 않았다. 저 마음이 바로 시이고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