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국도에서 고라니를 칠 뻔 했다
두 눈이 부딪혔을 때
나를 향해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짓던
고라니의 검고 큰 눈망울
오랫동안 그걸 잊지 못하고 있다
그날 이후 그 길을 지날 땐 자꾸 뭔가를 만지게 돼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천국을 아직도
돌려주지 못하고 있어요
내가 갖고 있어요
천국은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사라졌지요
도리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죽은 사람이 시집을 보내왔다. ‘유고 시집’이라고 한다. 시집을 받으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게 마련인데, 인사할 이가 없으면 몹시 슬프다. 허공이나 하늘에 대고 인사를 해봐도 슬픔은 가시질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에 남길 유산으로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시를 선택한 것이 고맙다. 그래서 천천히 오래 읽는다. 박서영 시인의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가 바로 그런 시집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시인은 몹시 착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다. 시를 읽다 보면 확신도 생긴다. 이를테면 ‘천국’이라는 작품이 그렇다. 시인은 고라니를 칠 뻔했던 경험을 시로 담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하면 내가 다치지 않았음을 안도하거나 얼굴이 벌게져 욕을 한다거나 도망을 친다. 그런데 시인은 고라니의 눈빛에 마음을 베였다. 나쁜 사람이 해를 가하든 착한 사람이 다정하게 대하든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고라니는 시인을 닮았다. 이 시에서는 아주 착한 생명과 아주 착한 생명이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착한 시인이 지금은 착한 것들의 천국에 있다면 좋겠다.
얼마 전 참기만 하는 나에게 친구가 ‘등신’이라며 화를 냈다. “그렇게 참으면 암 생긴다”고 무서운 충고도 해주었다. 착함이 나쁨이 된 세상이다. 그래서 시를 빌려 더 착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착한 우리는 과연 바보인가, 아니면 고라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