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것들을 그리하게 하는가
바다에 고기들을 헤엄치게 하는 것
공중에 새들을 날게 하고
숲에 짐승들을 치닫게 하며
물의 흐름을 제 길로 가게 하는 것
무엇이 그것들을 그리하게 하는가
굴러가던 왕의 수레를 쓰러뜨리는 것
온갖 생령의 숨을 때없이 멎게 하며
쏜 화살을 과녁에 머물게 하고
나무며 바위들을 제자리에 있도록
무엇이 그것들을 그리하게 하는가
고기들은 알지 못하고 헤엄친다
새들도 알지 못하며 날고
왕도 수레도 화살도 나무도 바위도
목숨을 지니고 안 지닌 모든 것들은
무엇이 그것들을 그리하게 하는가
그 하나도 온통 알지 못하고
우리 또한 끝내 알 수 없다.
문학인들도 엄혹한 겨울에 새 시작의 꿈을 꾼다. 스스로 봄이 되는 꿈, 바로 신춘문예 말이다. 지금쯤이면 각 부문 원고는 마감되었을 것이고 심사가 막바지거나 끝났을 테다. 인태성 시인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바 있다. 기형도를 비롯해 이은규, 김성규, 이정록, 안도현 등 역대 당선자 명단을 따라가다 보면 1955년 인태성의 이름이 나온다. 당시 그의 특징은 ‘조용한 관조’였다고 하는데 작품 편수는 많지 않아도 시가 단단하고 묵직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오래, 모든 세계를 둘러보는 듯한 이 시도 그러하다. 1연에서 시인은 생동의 원리에 대해 골몰한다. 왜 모든 생명들은 태어나 살아가는가. 2연에서는 죽음에 대해 몰두한다. 왜 우리는 언제고 호흡을 거두어야 하는가. 결코 알 수 없다는 마지막 말에는 일종의 경외감이 묻어 있다. 시인은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원리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한 해가 가고, 가지 말아야 할 귀한 목숨들도 갔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그들이 왜 갔는지를 모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왜 그들을 보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것도 모르고, 알아야 하는 것도 모른다. 이럴 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경외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