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15년을 살다 보니
달팽이
청개구리
딱정벌레
풀여치
이런 조그마한 것들이
더없이 그리워진다
조그만, 아주 조그마한 것들까지
사람으로 보여와서
날마다 나는
손톱을 매만져댄다
어느날 문득
나도 모르게
혹은 무심하게
이런 조그마한 것들을
짓눌러 죽여버릴까봐
날마다 나는
손톱을 깎으며
더욱 사람이 되자
더욱 더욱 사람이 되자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묻는다. 몹시 문제 있는 질문이다. 자기도 몰랐으면서 왜 묻는 걸까. 병아리가 크면 ‘닭’이 되듯 아이는 크면 ‘어른’이 된다. 질문의 요지는 아이의 희망 직종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가 커서 뭐가 될지 알고 있으면 이미 어린이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장래희망란에 뭔가를 써 봤다. 대충도 적어봤고 염원을 담아 진지하게도 적어봤다. 나는 항상 선생님이라고 썼다. 주로 선생님이 물어보니 그렇게 썼다. 만약 경찰관이 물어봤다면 경찰이라고 적었을 것이다. 그러다 나이 40이 넘어 비로소 명확한 장래희망이 생겼다. 불행하게도 불혹에게는 아무도 장래희망을 묻지 않는다. 그렇지만 40대에게도 장래도 희망도 있을 수 있다.
생애 가장 자발적 장래희망은 시인의 바람과도 같다. ‘더욱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세상에서 가장 되기 힘든 것이 ‘더욱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두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모두 사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지만 마음에 꼭꼭 눌러쓰리라. 우리의 이상은 바로 더욱 사람. 이것은 수많은 어른들의 진지한 장래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