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전쟁의 정의는 의외로 간단하다. 국가 혹은 단체 사이의 무력 싸움이 전쟁이다. 쉽게 말하자면 무기를 사용한 싸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전쟁의 정의는 짧아도 상처는 짧지 않다. 정의에 동원되는 단어는 적어도, 전쟁에 동원되는 생명은 적지 않다. 간단한 정의 안에는 간단치 않은 문제, 말하자면 죽음과 비탄 같은 것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시인들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쟁 때문에 고통을 겪은 시민들, 나아가 시인들 중에는 김수영이 있었다. 시인 김수영에게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은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그해 초, 막 서른이 된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단꿈은 잠시일 뿐, 곧 전쟁이 발발했고 시인은 끌려가서 의용군에 강제 입대되었다. 이후 체포되어 그 악명 높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시인의 장남이 태어났는데 시인은 아들이 세 살이 될 때까지 만나볼 수조차 없었다.
이런 시인의 시가 ‘사령’이다. ‘죽은 영혼’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1950년대 후반의 것으로 전쟁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전쟁에 호되게 아팠던 사람, 오래 갇혀 있던 시인이 말하는 자유는 어쩐지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는 경험으로, 온몸으로 자유의 소중함을 각인했기 때문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이 시와 더불어 이 땅을 지켜온 수많은 영혼들, 죽어도 죽지 않을 영혼들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