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는 낮에 자고 밤에 깨어 있다
나는 옆방에서
문을 반쯤 열어놓고 귀도 반쯤 열어놓고 잔다
흐린 정신이 밤에 돌아오시나 보다
새벽녘에 밥을 찾고 물을 찾는다
나도 새벽에 밥을 좀 먹고 물을 마신다
그러다 노모 곁에서 연필을 깎아
시를 쓴다 시를 지운다
나도 밤에 정신이 돌아오나 보다
정신의 끈을 잡고
노모와 동행하는 밤
참 멀다
자연에는 순서가 있다.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지나면 가을이 오게 되어 있다. 우리는 반드시 지켜지는 좋은 순서를 사랑하여 ‘순리(順理)’라는 예쁜 이름도 붙여주었다. 순하게, 이치대로 지켜지는 모든 것은 복되다.
복되다는 말은 사실 부럽다는 말이다. 우리네 삶은 제멋대로이고 마음의 계절은 하늘의 계절을 따르지 않는다. 어제는 컴컴한 지옥이었다가 오늘 다시 찬란한 계절이 되기도 한다. 달력상 같은 절기를 살고 있지만 마음들은 제각기 다른 계절을 난다. 그러니까 여름날에 ‘겨울밤’을 읽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시인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치매는 순리와 점점 더 멀어지는 병이다. 자야 할 밤에 일어나고, 먹을 때가 아닌데 먹는다. 그 어머니를 사랑하기 위해서 시인 역시 순리와 점점 더 멀어진다. 그는 어머니가 하는 낯선 행동에 군말 없이 동행한다. 이 동행의 밤은 실제 겨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미 시인과 어머니는 가장 어둡고 힘든 겨울밤에 들어서 있다.
간혹 시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 자체가 쓰는 경우가 있다. 마음이 아주 많이 아프면 시는 좋아진다. 마음을 많이 바쳐 사랑해도 시는 좋아진다. 이명수 시인의 겨울밤은 많이 아프고 사랑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더불어 이 시는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순리를 제시하고 있다. 순리를 거스르는 어머니를 지키는 것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더 큰 순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