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창밖의 먼 노을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저녁이 되니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네
그후로 노을이 몇 번 더 졌을 뿐인데
나는 그의 이른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하루가 거푸집으로 찍어내는 것 같아도
눈물로 기운 상복의 늘어진 주머니 속에는
불씨를 살리듯 후후 불어볼 노을이 있어서
나는 그와 함께 소주를 마시던 술집을 지나
닭갈비 타는 냄새를 지나
그의 사라진 말들을 지나 집으로 간다
집집마다 불이 들어오고
점자를 읽듯
아직 불빛을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이
한집으로 모여든다
요즘 나온 시집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가끔 받는다. 소월이나 목월 말고 따끈따끈한 시집을 읽고 싶다는 거다. 시집 경기가 너무 안 좋으니까 시를 읽는 한 명이 아쉽다. 그러니 추천에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시집은 소설책보다 개인의 취향이 훨씬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률이 상당히 높은 추천 시인들이 있다. 베스트라인업 중에서도 최근 승률이 높았던 시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적이란 말이 한마디도 안 나오는 시 ‘기적’이다. 안타깝게도 기적은 우리의 단어가 아니다. 근대는 불가능을 부정하지만, 기적은 불가능을 인정해야만 성립된다. 근대는 구원을 비웃지만, 기적은 구원을 갈구해야만 찾아온다. 우리가 근대의 배를 타고 출항할 때, 어딘가에 처박아두고 온 단어가 바로 기적이라는 말이다. 기적이 먼저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적을 먼저 버렸다. 그런 기적을 시인은 하나씩 찾아낸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한다. 헛헛한 마음으로도 계속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기적이다. 우리가 버렸던 기적이 우리보다 먼저 우리 곁에 돌아와 있었다. 이 놀라운 기적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바로 시이고 시를 읽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