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돌아가셨을 때 보니 내가 끼워드린 14K 가락지를 가슴 위에 꼬옥 품고 누워 계셨습니다. 그 반지는 1972년 2월 바람 부는 졸업식장에서 내가 상으로 받은,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어머님의 다 닳은 손가락에 끼워드린 것으로, 여동생 말에 의하면 어머님은 그 후로 그것을 단 하루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5월에는 유독 무슨 ‘날’이 많다. 순서대로 꼽자면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날, 스승의 날이다. 그중에서도 어버이날의 적용 범위가 가장 넓다. 어린이, 불교 신도, 근로자는 전체 인구수보다 적지만, 어버이를 가진 이는 딱 이 나라 인구 숫자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어버이가 없는 이는 없다. 그 이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번에 어버이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제정했는데 이 상을 주러 온 장관도, 진행하는 사회자도, 축하하는 사람도 모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고맙고 축하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딱히 슬픈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어버이를 떠올린 모든 사람은 그 생각만으로도 목이 메어 오고 콧날이 시큰했던 것이다. 이시영 시인의 시처럼 말이다.
‘어머니 고맙습니다’는 말은 한마디도 나와 있지 않은 시다. 어머니를 한없이 사랑한다는 말 역시 적혀 있지 않다. 그런데 읽자마자 알게 된다. 시인의 어머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인을 사랑했구나. 시인은 그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구나. 그래서인지 시인은 유독 어머니에 대한 작품을 여럿 발표했다. 순금도 아니고 18K도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준 14K 반지를 절대 빼지 않으셨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졸업식장에서 받은 반지였다. 직접 끼워준 귀한 것이었다. 그러니 어머니는 왕관을 준대도 바꾸지 않으셨을 것이다. 모든 어머니에게 자식은 세상보다 무겁고 크기 때문이다. 비록 이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지만, 5월에만은 꼭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