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고대’라는 말이 어울리던 옛날에 시는 노래였다. 그저 그런 노래는 아니고, 낮은 땅에서 높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던 노래였다. 솟구치려면 힘이 세고 나아가는 방향도 분명해야 한다. 영웅서사시를 떠올려 보자. 그때의 시는 저만치 별처럼 빛나는 신이라든가 영웅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가는 기세나 느낌은 마치 폭죽이나 불꽃놀이 같았을 것이다. 분명 그것은 ‘상승의 시’였다.
아주 오랜 후, 그러니까 ‘지금’의 시는 낱말의 집합이 되었다. 방향은 수천으로 나뉘었고 날아오르던 힘도 사라졌다. 시인들은 영웅을 부르는 대신 흩어진 별의 조각들을 모아 ‘마음’이라는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마음은 고개를 숙여야 보이는 것,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는 것. 지금의 시는 분명히 안과 아래를 향하고 있다.
지금의 시에는 영웅서사시 못지않은 위대함이 있다. 저만치의 신이나 영웅에게 나아가지 못해도 가까이의 심성과 인간에게 파고드는 힘이 있다. 곽효환 시인의 ‘그날’을 보면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영웅이 아닌 연약한 한 사람이 어떻게 위대해지는지 알 수 있다. 그날, 울컥 울음이 터지는 인간은 살아 있다. 그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은 깨어 있다. 그날, 다시 견디기로 다짐하는 인간은 위대하다.
저 아픈 ‘그날’이 없는 사람은 없다. 절망의 ‘그날’을 기억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시를 읽으며 하나의 사실을 더 보탤 수 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영웅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우리 안의 우리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