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 조각이
미지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날이 더워도 강은 흐르고, 날이 추워도 강은 흐른다. 세상이 징그럽게 싫어도 강은 흐르고, 사무치게 좋아도 강은 흐른다. 우리네가 살아내고 있는 ‘인생’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강을 보고 있노라면 저것이 바로 ‘인생’ 자체인 듯싶다.
이성복 시인의 ‘강’은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다. 인생 같은 강, 아니 강 같은 인생을 말하고 있다. 이 시에 의하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기쁨도, 슬픔도, 논리도, 운명도 아니다. 어디에도 원동력 같은 것은 없다. 우리의 삶이란 그저 삶이기 때문에 흐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하다가도 어떻게든 희망을 찾아 강둑을 오르는 것이다. 살라고 주어진 것이 삶이니까, 알지 못하는 마지막 날까지 살아 보는 것이다.
이성복의 시는 장마에, 혹은 지독한 더위에 어울린다. 찬란한 봄날이나, 깊은 가을보다는 끈적거리는 더위가 정신과 몸을 흐려놓을 때 유독 그의 시가 마음을 치고 간다. 때로 몸은 정신을 장악하기도 하는데, 지독하게 더울 때 우리의 마음은 차분한 논리를 자꾸만 벗어난다. 논리정연한 자기 이해가 흐트러지고 삶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 ‘강’을 읽는다. 행복한 시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저 강은 계속 흐른다고, 그저 흐른다고 말해준다. 아파도, 어두워도, 내가 아프고 어두운 이유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저 인생이 지속되어야 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