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넘은 나이에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아픔처럼 손바닥에는 못이 박혀 있고
세월의 바람에 시달리느라 그랬는지
얼굴에 이랑처럼 골이 깊구나
봄 여름 가을 없이 평생을 한시도
일손을 놓고는 살 수 없었던 사람
이 사람을 나는 좋아했다
자식 낳고 자식 키우고 이날 이때까지
세상에 근심 걱정 많기도 했던 사람
이 사람을 나는 사랑했다
나의 피이고 나의 살이고 나의 뼈였던 사람
시인 김남주는 1970, 80년대 저항의 아이콘이다. 그의 시는 활화산처럼 뜨겁고, 그의 말은 칼처럼 날카로우며, 그의 행보는 녹두장군처럼 거침없다. 이를테면 김남주는 한 ‘시대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시대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한 집안의 아들’ 수준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들이 아니라 시대의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 그 어머니가 바로 이 시에 담겨 있다. 시인의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고, 번듯한 아들이라는 희망 말고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부모는 총명한 아들에게 그럴듯한 직업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시인은 부모의 소망을 이뤄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생 아들의 뒷모습만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시인이 부모를 저버렸던 것일까. 아버지의 자랑이자 어머니의 사랑이었던 그가 부모를 배신한 것일까. 이 시를 읽고 나면 그가 왜 부모 대신 저항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성실한 일꾼인 저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했다. 저 어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저 어머니와 같은 모든 어머니들과 농사꾼들마저 사랑했던 것이다.
6월이 되니 점점 햇빛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아무리 뜨겁다 한들 김남주 시인만큼은 아니다. 아무리 뜨거운들 저 어머니라는 이름만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