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회오리바람 속에서 깜빡거린다
저 불빛, 부러진 단검 하나 남은 검투사 같다
무슨 결박으로 동여매 있기에
제 안의 황야에 저리 고달프게 맞서는 것일까
등대는 외롭고 적막하고 단호하다
모든 찰나는 단호하므로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으므로 과거도 없다
모든 찰나는 영원한 현재이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결연하게 깜빡거린다
저 불빛, 절벽 앞에서의 황홀이다
우리는 어둠이 두렵다. 정확히는 어둠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 속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알지 못하므로 상상한다. 어느 심연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있을까. 상상력이 극대화하면 어둠은 무서운 괴물이 되어버린다. 괴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그저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둠에게 세상 가장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칠흑 같은 밤, 갑판 위에 서 있으면 어둠의 힘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빛이 없는 밤바다는 파도 소리로만 존재하고 하늘도 그저 어둠이다. 진한 어둠 앞에서 이성적 사고는 느려지고 감각과 불안이 증폭된다. 이런 두려움의 상황에서 시 ‘등대’는 태어났다. 시의 바다는 어두울 뿐만 아니라 회오리바람까지 몰아치고 있다. 여기에 있는 누군가는 어둠과, 바람과 싸워야 한다. 이 격렬한 싸움 중의 누군가는 등대를 발견했다. 등대는 마치 눈빛이 형형한 검투사처럼 맞서고 있었다. 그리고 시인은 이 등대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했다. 충실하게 현재를 사는 법.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법. 시의 등대는 이러한 의미로서 존재한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를 삼키는 어둠에 대해 생각한다. 불확실한 미래, 속해보지 못한 세력, 살아보지 못한 인생이 지닌 어둠에 대해 생각한다. 두려움을 먹고 어둠은 진해졌고, 어둠이 진할수록 우리는 약해졌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한 점의 불빛뿐이다. 마음속 등대에 불을 켤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