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배 ― 박용철(1904∼1938)
나 두 야 간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박용철은 생전에 시집을 내지 못했다. 유학도 다녀오고, 결혼도 했다는데 어디 취직을 해서 돈벌이에 매진한 경력이 없다. 목표라고는 오직 문학뿐이어서 문예지 꾸려내고 남의 시집을 출간했다. 본인은 정작 돈을 벌지 못하면서도 사비를 털어 문학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아마 가족은 퍽 속을 끓였겠지만 덕분에 우리는 품격 있는 문예지와 시집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의 약력을 읽다 보면 박용철이라는 인물은 몹시 고매하고 우아한 사람임을 느끼게 된다. 근대의 정신적 귀족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리라. 그가 남긴 문학적 유산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오래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1938년 결핵으로 사망했는데, 더 살았더라면 자기 시집도 냈을 것이고 대표 시도 더 늘었을 것이다.
박용철의 대표 시 ‘떠나가는 배’는 오늘날에도 퇴색되지 않았다. 이 시가 제일로 가깝게 느껴질 이들은 ‘젊은 나이’의 사람들이다. 꽃보다 예쁘다는 젊은 나이는 가장 힘들고 고단할 때다. 나이든 이들은 젊음 하나만 가져도 좋다지만, 젊은이들은 젊음 하나만 가졌기 때문에 눈물겹다. 박용철 살아생전, 그 엄혹하던 시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바라건대 어느 멋진 시절이 찾아와, 젊은 나이의 사람들이 이 시를 자기 이야기인 양 읽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