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 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만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려네
이 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집에 단골처럼 등장한다. 주제가 뭔지, 성격이 뭔지, 밑줄 그어가며 외우는 시라는 말이다. 숨 가쁘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시를 음미할 시간이 어디 있으랴. 시의 결이라든가, 여운을 음미할 여유가 어디 있을까. 무슨 말인지조차 잘 모르겠는데 무조건 문제를 풀어댔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싫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시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출발하는데, 시험은 마음이 아니라 지식에서 출발한다.
신경림의 ‘고향길’은 1981년 11월에 발표되었다. 지금이 11월이니 딱 37년 전 세상에 나온 셈이다. 37년 전의 고향길이란, 혹은 고향을 떠나던 발걸음은 어땠을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마도 한창 때의 사람이 이 시에는 등장한다. 청년이란 푸른 꿈을 가진 사람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꿈은 이미 노을처럼 쇠하였다. 그에게는 꿈을 꿀 여유가 없다. 집은 돌보는 이가 없어 낡았고, 고향 마을은 이미 황폐해졌다. 희망도 미래도 없는 그곳을 청년은 몹시 사랑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고향을 등지는 발걸음이 이렇게 안타까울 리 없다.
저 청년은 37년이 지난 지금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본다. 금전꾼이 되어 돈은 좀 벌었을까. 어느 고시원에 피곤한 몸을 의탁했을까. 아직도 허겁지겁 장국밥을 들이켜고 있을까. 시를 읽으니 깊어가는 가을이 더욱 쓸쓸하다. 올 11월에는 부디 모든 나그네들이 덜 애달프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