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야 원래 싸움터였다
바다가 어둠을 여는 줄로 너는 알았지?
바다가 빛을 켜는 줄로 알고 있었지?
아니다 처음 어둠이 바다를 열었다 빛이
바다를 열었지 싸움이었다
어둠이 자그만 빛들을 몰아내면 저 하늘 끝에서 빛들이 휘몰아와 어둠을 밀어내는
괴로워 울었다 바다는
괴로움을 삭이면서 끝남이 없는 싸움을 울부짖어 왔다
(…)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바다를 알 수 없다
누이야 바람 부는 날 바다로 나가서 5월 보리 이랑
일렁이는 바다를 보라 텀벙텀벙
너와 나의 알몸뚱이 유년이 헤엄치는
바다를 보라 겨울날
초가지붕을 넘어 하늬바람 속 까옥까옥
까마귀 등을 타고 제주의
겨울을 빚는 파도 소리를 보라
파도 소리가 열어놓는 하늘 밖의 하늘을 보라 누이야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시를 쓰던 문충성 시인이 올해 11월에 지상을 떠났다. 제주를 몹시 사랑하던 ‘제주의 시인’이었다. 그의 처음과 끝은 언제나 제주도였다. 등단작이 ‘제주바다’였고, 첫 시집 제목도 ‘제주바다’였다. 그의 이름을 널리 각인케 한 것도 바로 ‘제주바다’였다.
시에서 그는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바다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온몸으로 알아버리고 온몸으로 기억한 제주바다가 바로 진짜라는 말이다. 대체 진짜란 뭘까. 이 시인에게 있어 제주바다는 어머니의 눈물 바다였다. 밖에서 몰아치는 힘들에 의해 이리저리 고통받는 터전이었다. 나아가 보리처럼 파랗게 살아있는 생명이었고, 유년의 저장고였다.
시인의 입을 통해 제주바다의 모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시인은 해가 떠오르는, 해가 지는, 일렁이는, 포효하는, 깊어가는, 물러가는 모든 바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인은 바다를 바라보고, 기록하고, 그리워했다. 이것을 달리 말한다면, 시인은 바다를 ‘사랑’했다. 우리는 과연 한 대상을 이렇게 사랑한 적이 있었을까. 시의 사랑 앞에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시의 사랑 속에 제주는 더 찬란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