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은 시인이다. 그가 시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를 시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정도로, 김종삼은 시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표 시인이 자신은 시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시가, 바로 이 시다. 한창 시를 쓰고 있는 중에도 나는 시인이 못 된다고 말하는 시가, 바로 이 시다. 무슨 소리인지, 처음에는 의아하다. 그렇지만 시를 읽으면서 차츰 그 말뜻을 이해하게 된다. 게다가 조금씩 이해하면서 점차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면서 시를 잘 모르겠다는 그의 말은 참으로 겸손하다. 그런데 김종삼 시인은 겸양을 드러내려고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참시인인 것이 이 대목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는 시에 대해서 다 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들먹거리지도, 잘난 척 교만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항상 배우는 자세로, 더 정진하는 자세로 시를 높이고 몸을 낮추었다.
이 위대한 시인은 부족하고 잘 모르는 자신보다 더 훌륭하고 빛나는 진짜 시인들이 있다고 말한다.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지만 순하고 명랑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에 허다하게 많지만 하나같이 고귀한 저 사람들. 김종삼 시인은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대단하고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라며 찬탄한다. 시인이 뭔가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면, 저 평범한 모든 이들이 가장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며 고개를 숙인다.
선거철이다 보니 이 시가 더욱 마음에 들어온다. 이제 와서 김종삼 시인을 정치계로 모셔올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는 소박하게 바란다. 안 유명하고 덜 가졌으며 선한 사람들,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최고라는 생각, 이런 생각이 실현되는 좋은 정치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