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근심이 하 길기에
꿈도 길 줄 알았더니
님을 보러 가는 길에
반도 못 가서 깨었구나
새벽 꿈이 하 짧기에
근심도 짧을 줄 알았더니
근심에서 근심으로
끝간 데를 모르겠다
만일 님에게도
꿈과 근심이 있거든
차라리
근심이 꿈 되고 꿈이 근심 되어라
인간사 원래 그런 것인지 마음은 늘 부산하다.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누군가 바쁜 내 마음을 잠시 ‘멈춤’ 해주었으면 좋을 때가 있다. 불행히도 그 누군가가 곁에 없다면 ‘시’가 답이다. 시는 일상과 디지털 속에서 나를 잠시 멈추게 해준다. 멈추고 생각하게 해준다. 멈추고 상상하게 해준다. 가능하다면 오늘과 거리가 먼 옛 시라든가, 현실과 거리가 있는 고풍스러운 시가 좋다. 옛 시에는 진실이 있고, 고풍 속에는 멋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한용운의 이 고전적이면서 조금 오래된 시처럼 말이다.
한용운이 쓴 시는 대부분 ‘님’에 대한 해바라기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이 지고지순하게 일방향이고 한결같다. 요즘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마음 방식이다. 이 작품도 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고 있다. 사랑이라는 말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건 분명히 사랑의 시다. 게다가 절묘하고 아름답다.
시인의 곁에는 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님을 보려면 꿈길밖에 길이 없다. 그런데 근심은 깊고 꿈은 짧아 님을 못 뵈었다. 이때 시인은 자신의 근심과 꿈을 말하지 않고 님의 근심과 꿈을 말한다. 나에게 있는 이 곤란이 님에게는 찾아오지 않기를, 님에게는 좋은 것이 길고 나쁜 것이 짧기를 기원한다. 내게 있는 좋은 것을 네게 주고 싶은 마음, 내게 있는 나쁜 것이 네게 없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일까. 한용운 시인은 그 오묘한 것을 몹시 간단하게 풀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