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나린다
눈이 날린다
눈이 쌓인다
눈 속에 태고가 있다
눈 속에 오막살이가 있다
눈 속에 내 어린 시절이 있다
눈을 맞으며 길을 걷고 싶다
눈을 맞으며 날이 저물고 싶다
눈을 털며 주막에 들고 싶다
눈같이 흰 마음을 생각한다
눈같이 찬 님을 생각한다
눈같이 슨 청춘을 생각한다
눈은 내 옛 이야기의 시작
눈은 내 옛 사랑의 모습
눈은 내 옛 마음의 향수
눈이 나린다
눈이 날린다
눈이 쌓인다
자그마치 53년 전의 동아일보에 한 기상 예보관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일시를 정확히 소개하자면 1965년 1월 7일이다. 예보관이 신문에 무슨 글을 썼을지는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맞다. 그것은 일기 예보였다. 날씨를 예측하고 설명하는 기사 말이다.
뜬금없이 53년 전의 날씨가 궁금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일기 예보가 조금 특별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따름이다. 예보관은 날씨가 추울 거고, 눈이 퍽 많이 올 거라고 썼다. 항상 1월은 추웠고 대개 눈이 내렸으니 여기까지는 별다를 것이 없다.
예보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시, 바로 김동명의 ‘백설부’였다. 예보관은 한 주의 적설량을 소개하면서 이 시의 한 연을 읊었던 것이다. 참 시적인 기상 예보인 셈이다.
눈을 보고 시 구절을 떠올리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다. 눈을 보고 시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게다가 그 시가 ‘백설부’라니. 이 시는 구구절절 묘미가 넘친다. 눈 속에 어린 시절이 있다는 말도 맞고, 눈 속에 님과 청춘이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시도 멋지지만 53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무려 일기 예보가 마음을 울리는 까닭은 시를 읽는 우리의 마음이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낯모를 예보관은 “비록 마음이 가난하고 위가 빈 우리들이라지만 이런 풍치만은 못내 뽐내고 싶군요”라고 썼다. 놀랍게도 2018년을 사는 우리들의 마음 역시 이와 같다.
눈 내린 하얀 세상을 보고, 김동명의 ‘백설부’를 읽고 나면, 의식주에 매달려 사는 것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진다. 53년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다. 가난하고 배가 고파도 우리는 가난과 배고픔과 가난에 지지 않는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