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기 작은 꽃에
물 주는 뜻은
여름 오거든 잎 자라라는 탓입니다.
남들이 말하기를-
가을 오거든 열매 맺으라는 탓입니다.
남들이 말하기를
돌과 모래 위에 어이 열매 맺을까
그러나 나는
꽃에 물을 줍니다.
(중략)
꽃 필 때에는 안 오셨으나
잎 필 때에도 안 오셨으나
열매 맺을 때에야 설마 아니 오실까.
오늘도 나는 뜰에 나가서
물을 줍니다. 꽃에 물을 줍니다.
길었던 여름이 끝나고 다시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 선선해진 바람 앞에서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한다. 아무리 잘난 인간도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뿐이다. 곧 지날 여름에 모두들 절감했다. 자연은 싸워 이길 대상이 아니라, 위로는 존경하고 아래로는 살펴야 할 전방위적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오일도의 시에는 자연 앞에 고개를 숙일 뿐만 아니라 허리까지 굽힌 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지금 마른 땅에 피어난 꽃에 물을 주고 있다. 꽃에 물을 주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다. 그 낮춘 자세가 굴욕적이기는커녕 다정하고 아름답다. 한 포기 작은 꽃은 보잘것없지만 시인은 작은 꽃이 맞이할 미래까지 보잘것없다고 폄하하지 않는다. 여전히 기대하고, 근거 없이 희망하고,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거친 땅 위 작은 꽃나무도 언젠가는 잎을 피우겠지, 언젠가는 열매도 맺겠지. 오늘도 희망하며 시인은 매일같이 꽃나무에 물을 준다.
고운 미래를 정해두고 사랑을 아끼지 않는 시인의 모습은 우리 어머니들을 닮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어머니들은 매일같이 저러하다. 그저 잘 자라라는 뜻에서 마음의 무릎을 꿇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부어준다. 이런 정성의 물이 꽃나무에도, 아이들에게도, 우리 자신에게도 필요한 그런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