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떠내려가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무너지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뒤돌아보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눈물 흘리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너를 잃어버리지 말아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불을 질러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칼을 갈아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심장을 푸득여라.
이에는 이로 갚고 사랑 포기하라.
눈에는 눈으로 갚고 사랑 포기하라.
‘Boys, be ambitious!’ 어쩐지 익숙한 이 말은 윌리엄 클라크라는 사람이 남긴 명언이다. 예전의 어른들은 청년들에게 이 말을 자주 들려주었다. 일종의 덕담이나 격려였다. 그런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과거의 덕담은 오늘날 많이 퇴색해 버렸다. 요즘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지게”라고 격려하는 어른은 거의 없다.
시대가, 사람이, 삶이 바뀌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는 바람, 희망, 격려도 바뀌었다. 힘들고 지친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박두진의 시 ‘십계’는 퍽 오래전에 나온 작품이지만 위기의 현대인들을 예상이나 한 듯하다. 특히 맨 위의 다섯 행은 괴롭고, 외롭고, 위태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확 들어가 박힌다. 살기 팍팍한 보통 사람들은 떠내려갈 것 같고, 무너져 내릴 것만 같고,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때가 많다. 그럴 때 짧고 굵게, “떠내려가지 마. 무너지지 마. 너를 잃어버리지 마”라고 누군가 말해준다면 조금은 힘이 날 수 있다. 저 사람은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구나. 내가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해 주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박두진의 무뚝뚝한 구절은 더 열심히 하면 다 잘될 거라는 위로보다 훨씬 낫다.
사실 박두진의 저 시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단속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위로라든가 이해를 위해 쓴 작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 서릿발 같은 말들이 다음 송년에는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