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부(1942∼2012)
오늘은 기다리는 것들 모두
황사가 되어
우리 야윈 하늘 노랗게 물들이고
더 길어진 내 모가지,
깊이 패인 가슴을
씨름꾼 두 다리로 와서 쓰러뜨리네.
그리운 것들은 바다 건너 모두 먼데서
알몸으로 나부끼다가
다 찢어져 뭉개진 다음에야
쓸모없는 먼지투성이로 와서
오늘은 나를
재채기 눈물 콧물 나게 하네.
해일이 되어 올라오면 아름다울까.
다 부숴놓고 도로 내려가는 것을.
다치지 않은 살결들
깨끗한 손들만이 남아서
다시 일으켜 세우면 아름다울까.
기진맥진 누워버린 얼굴들을.
이성부 시인의 작품 중에 ‘봄’이라는 시가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이 시 참 좋은데, 한 가지 단점이 있다. 그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제집에서 만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참 좋은 시들이 문제집에 등장하는 순간, 덜 멋있어 보인다. 역시 시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해야 맛이다.
다행히도 이성부 시인에게는 여러 편의 봄 시가 있다. 시인이 왜 하필 봄의 시를 많이 썼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평생 동안 이성부 시인은 절망 속의 희망을 찾는 데 주력했다. 겨울을 이기고 돌아온 봄, 혹은 겨울 끝에 와주길 바라는 봄만큼 절망과 희망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 봄 시 중에서 한 편을 오늘 소개한다. 이것 역시 희망의 시다. 물론 차이는 있다. ‘봄’이 희망의 도래에 강한 느낌표를 선사한다면, 이 작품은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는 몸짓을 느끼게 한다.
시인에게는 몹시 기다리는 것, 그리운 무엇인가가 있었다. 목을 빼고 하늘만 쳐다보는데, 그 소중한 것은 아니 오고 대신 황사만 찾아왔다. 그래서 시인은 내 소중한 무엇이 다 망가지고 부서져 저렇게 황사가 되어 찾아오는가 탄식하고 있다. 눈물 콧물 흘리며, 기진맥진 지쳐 버렸지만 시인은 여윈 가슴을 붙잡고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운 것은 아직 없는 게 아니니까, 그리운 것은 여전히 저 먼 곳에 있으니까 사랑하고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멀리 있어서 더 그립다. 이것은 우리가 황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 절망에 익숙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운 것들은 모두 먼 데서, 언젠가는 돌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