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열 살이 마지막 가는
섣달 그믐밤.
올해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남은 이야기를
마저 적는다.
-아아, 실수투성이
부끄러운 내 열 살아,
부디 안녕, 안녕…
인제 날이 새면 새해,
나는 열하고 새로 한 살.
내 책상 위엔 벌써부터
새 일기장이 벌써부터
새 일기장이 놓여 있다.
-빛내리라, 내 열한 살.
바르고 참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살리라.
내 열한 살.
나이가 들면서는 신정보다 구정이 반갑다. 하루라도 새해가 늦어져야 나이를 덜 먹지 않겠는가. 어려서는 언제 설날이 오나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기다렸다. 한 살이라도 나이를 더 먹고 싶어 떡국을 두 그릇씩 먹곤 했다. 그때는 새해를 싫어하는 어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른의 마음은 어린이의 마음과 반대로 간다.
그래서 반성한다. 어린이를 닮아 우리 어른도 좀 산뜻해지고, 솔직해지고, 깨끗해지고 싶다. 우리도 바른 어린이 시기를 분명히 거쳤는데 언제 어디서부터 못난이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 어린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 요즘 들어서는 더더욱 실감난다. 어른이 어린이만큼만 살아도 우리 세상은 더 밝고 깨끗해질 것이다. 강소천 시인의 동시는 바로 그런 마음을 담고 있다.
섣달 그믐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저물면 새해의 첫날이 밝아올 것이다. 지는 해와 오는 해의 경계에서 고작 열 살 된 어린이는 비장하게 일기를 쓰고 있다. 그는 지난 한 해를 부끄러워하면서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새 일기장을 열어 새해의 첫 장을 다짐으로 채운다. 이제는 바르고 참되게 살겠다, 열한 살에는 열 살처럼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 자랑스러운 열한 살이 되리라, 이런 다짐이 자못 진지해서 귀엽고 존경스럽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일기 쓰던 밤이 있었다.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던 날이 있었다. 분명 어른에게도 이 어린이와 같았던 나날이 있었는데 지금 그 어린이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곧 찾아올 섣달 그믐밤에 무엇을 하려나.